의료계가 의대 정원 증원을 멈춰달라며 낸 집행정지 신청에 대해서 법원이 공공복리가 우선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매년 2000명의 의대 증원으로 의대생의 학습권이 침해될 수 있다며 정부에 향후 의대 증원 규모를 유연하게 조정할 것을 촉구했다. 이로써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은 탄력을 받게 됐다.
16일 서울고법 행정7부(부장 구회근 배상원 최다은)는 의대 교수와 대학병원 전공의, 의대생 등 18명이 보건복지부·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의대 정원 2000명 증원·배분 결정의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집행정지 신청을 각하 또는 기각했다.
재판부는 “의과대학 교수, 전공의, 의과대학 준비생들의 신청은 1심과 같이 사건 처분의 직접 상대방이 아니라 제3자에 불과하다”며 각하를 결정하고 의대생에 대해선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며 이들의 집행정지 신청은 기각했다. 의대생에 대해선 “헌법 등 관련 법령상 의대생의 학습권은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에 해당한다. 의대 정원 증원 처분으로 인해 교육시설에 참여할 기회를 제한받을 수 있다”며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한 긴급한 필요성은 인정했다.
다만 재판부는 의대생의 학습권 침해가 최소화되도록 정부가 2026학년도 이후의 의대 정원을 정할 때 매년 대학 측의 의견을 존중해 자체적으로 산정한 숫자를 넘지 않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계 법률대리인인 이병철 법무법인 찬종 변호사는 이날 대법원에 즉각 재항고할 뜻을 밝혔다.
앞서 1심을 맡은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원고의 '신청인 적격'을 문제 삼으며 집행정지 신청 자체를 각하했다. 각하란 소송이 요건을 갖추지 못하거나 청구 내용이 판단 대상이 아닐 경우 본안을 심리하지 않고 재판을 끝내는 결정이다. 같은 이유로 전국 33개 의대 교수협의회(전의교협), 의대 교수·전공의·의대생·수험생 등이 각각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 8건 중 7건이 줄줄이 각하됐다. 이후 항고심 재판부는 정부에 의대정원 증원과 관련된 추가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청한 바 있다. 정부 측에서는 대한의사협회와의 의료현안협의체 보도자료와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산하 의사인력전문위원회 회의록 등 총 49건을 제출했다.
서울고법의 이번 결정으로 27년 만의 의대 증원이 사실상 확정됐다. 신청인 측이나 정부가 불복해 재항고를 하더라도 다음달 초로 예정된 대학별 정원 확정 때까지 대법원 결정이 나오는 것은 물리적으로 힘들기 때문이다. 각 대학은 이달 말까지 2025학년도 대입 수시모집 요강에 의대 모집인원을 반영해 정원을 확정해야 한다.